# 목회칼럼
 
No. 43 기도생활에 만족하십니까?
관리자  

오늘은 기도생활에 대해서 스스로 자문자답해 보고자 합니다. “나는 지금 기도생활에 스스로 만족한가?” 이것은 “나는 지금 예수님과의 관계에 만족한가? 예수님은 나의 신랑이시고 나는 신부로서 신랑과 신부의 관계에 만족함이 있는가?”라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신랑과 신부가 결혼을 통해서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서로의 몸을 자기가 주장하지 아니하고 상대방이 주장하도록 권리를 넘겨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랑은 신랑이 되는 순간부터 자기 몸을 자기가 주장하지 아니하고 신부가 신랑의 몸을 주장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신부는 신부가 되는 순간부터 자기 몸을 자기가 주장하지 아니하고 신랑이 신부의 몸을 주장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랑과 신부가 한 몸이 된다는 의미입니다(고전7:3-4).

그리스도인의 기도생활에 신비로움이 여기에 있습니다. 기도생활을 한다는 것은 예수님과 우리가 신랑과 신부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음으로 우리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하면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신랑이 되시고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가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 중에 한 소중한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기도에 신비로움이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이 신부가 신랑에게 요청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신부가 신랑에게 요청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랑이 신부의 요청에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신랑은 신부의 요청에 응답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깊은 기도생활을 하실 수 있습니까? 그것은 기도란 신랑과 신부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갖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기도생활이 어렵고 부자연스럽습니다. 기도는 문제가 있을 때 문제 해결을 위해서 지나가는 사람 혹은 이웃 집 사람에게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생활은 신랑과 신부의 일상적인 삶입니다. “기도생활에 만족하십니까?” 이 질문은 “예수님과 만족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하는 질문입니다.

예수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를 누리는 것, 그것의 시작이 기도생활을 누리는 것입니다. 더 깊은 친밀한 기도생활을 시작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 서승동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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