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으며 사십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지만 잘 안 들려서 걱정하거나 고민하는 분은 없습니까? 우리는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면, 주님을 믿지 못했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로마서 10장을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라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믿음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는 것과 같고, '믿음이 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즉,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그분을 향한 믿음도 가질 수 없습니다.
분명히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고 있음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살려고 몸부림칠까요? 어떤 신비한 일들을 경험하기 위해서입니까? 나 자신의 미래나 다른 사람들의 미래를 알아보기 위해서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존중하는 가장 실제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귀하게 여기는 사람의 말에 귀 기울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일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됩니다.
요한복음 20장을 보면, 이 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믿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기 위함이라고 나옵니다. 요한복음 1~3장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일어날 놀라운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영생이 주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4장에 드디어 믿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 중 수가성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 여인 한 사람을 통해 모든 사마리아인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정말 엄청난 일이 벌어집니다. 여러분 한 사람을 통해서도 한 종족이 바뀔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인이 전하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마리아인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자기들과 함께 머물러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틀 동안 그곳에 머무시면서, 그들과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간접적으로 전해 듣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나서 듣게 된 그들은 이제 예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더 깊은 관계, 확실한 관계를 형성한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39절과 42절 말씀을 한 번 비교해 보십시오. 여자의 말을 듣고 믿는 것과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믿는 것은 서로 다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은 동일하지만, 믿음의 질이 다릅니다.
'묵상,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작입니다' 중, 161-162쪽 / 서승동 목사 지음 |